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01

요나서,
뒤집힌 이야기

하나님을 제일 잘 안다는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서 제일 멀 수 있다는 이야기

요나 1–4장
여는 글

요나서는 짧은 네 장짜리 책이지만, 가만히 읽다 보면 거의 모든 장면이 거꾸로 뒤집혀 있어요. 선지자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고,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원수의 도시는 설교 한 번에 회개하는데, 정작 선지자는 그 은혜 때문에 화를 내요.

웃음이 나는데, 웃다 보면 어느새 그 웃음이 나를 향하고 있는 책이에요. 1부에서는 요나서가 왜 "풍자적인 책"으로 불리는지 큰 그림을 보고, 2부에서는 좀 더 숨어 있는 일곱 장면을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1부

요나서는 풍자적인 책일까?

큰 그림으로 보는 요나서의 아이러니

네, 요나서는 구약에서 아이러니와 풍자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진 책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다만 학자들 사이에서도 부르는 이름은 조금 달라요.

"풍자(satire)"라는 쪽과장과 뒤집힘으로 누군가의 모습을 꼬집는 문학이라고 봐요.
"아이러니가 강한 이야기"라는 쪽조롱보다 가르침이 목적이니, 교훈적 이야기로 부르자고 해요.
풍자적으로 읽히는 대표 장면 여섯 가지
1
선지자가 반대로 도망간다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할 선지자가,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달아나요.
2
이방인이 더 경건하다
배 안의 이방 선원들은 기도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데, 요나는 배 밑층에서 잠만 자요.
3
과장된 회개
짧은 설교 한 번에 니느웨 전체가 회개하고, 짐승들까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해요.
4
은혜에 화내는 선지자
회개한 도시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요나는 "죽는 게 낫겠다"며 분노해요.
5
박넝쿨 사건
수십만 명의 생명보다, 자기 머리 위 그늘을 만들어 주던 식물 하나에 더 마음을 써요.
6
열린 결말
책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나고, 요나의 대답은 없어요. 그 대답을 읽는 사람이 하도록 남겨 둔 거예요.

결국 요나서의 날카로운 끝은 니느웨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자기 민족 안에만 가두려던 이스라엘 자신을 향해요. 그리고 오늘 그 자리에 앉은 우리를 향하고요.

풍자적 기법을 인정한다고 해서 역사성을 부정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예수님도 마태복음 12장에서 요나를 실제 인물로 언급하셨고,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은 실제 사건을 아이러니가 강한 문학적 방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봐요.

2부

더 깊이 숨은 일곱 장면

한 번 눈에 들어오면 거의 모든 장면이 뒤집혀 있어요

1

한 사람을 살리려는 이방인,
도시가 죽기를 기다리는 선지자

요나 1:13 · 4:5
이방 선원들
낯선 외국인 한 명을 살리려고 폭풍 속에서 힘껏 노를 젓는다
VS
선지자 요나
12만 명이 사는 도시가 무너지기를 초막에 앉아 기다린다

요나가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을 때, 선원들은 바로 던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육지로 돌아가려고 힘써 노를 저었어요(1:13). 자기들 배를 위험에 빠뜨린 낯선 외국인 한 사람을 어떻게든 살리려고요.

그런데 4장의 요나는 어때요? 니느웨 성 동쪽에 초막까지 짓고 앉아서, 성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요(4:5). 마치 공연장 관람석에 앉은 사람처럼요. 이방인은 한 생명을 아끼는데, 선지자는 도시 전체의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돌아보기
나는 누군가 잘못되기를 "구경하듯"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2

세 번이나 죽겠다는 선지자,
끝까지 살리시는 하나님

요나 1:12 · 4:3 · 4:8

요나는 이 짧은 책에서 세 번이나 죽음을 택해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1:12).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음이니이다"(4:3). 그리고 뜨거운 바람 아래서 또 한 번,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으니이다"(4:8).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마다 살리세요. 바다에서는 물고기로, 뙤약볕 아래서는 박넝쿨 그늘로, 그리고 마지막엔 부드러운 질문으로요. 이 책에서 하나님은 원수 도시만 끈질기게 살리시는 게 아니에요. 죽겠다고 떼쓰는 선지자도 끈질기게 살리세요.

돌아보기
내가 "이제 됐어요, 그만할래요" 하고 포기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3

같은 고백, 이중잣대

요나 2:9 · 4:2
내가 구원받을 때 (2:9)
"구원은 여호와께 있나이다!" — 감격의 찬양
VS
원수가 구원받을 때 (4:2)
"그래서 도망쳤던 겁니다" — 분노의 불평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목청 높여 외쳐요. "구원은 여호와께 있나이다." 너무 멋진 고백이에요.

그런데 똑같은 구원이 니느웨에게 가자, 요나는 화를 내요. "주께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셔서 뜻을 돌이키실 줄 알았기 때문에 도망쳤던 거예요."

결국 내가 받은 은혜는 찬양 제목이고, 원수가 받은 은혜는 불평 제목이 된 거예요. 읽다 보면 좀 찔리죠. 😄

돌아보기
내가 받은 은혜만큼, 다른 사람이 받는 은혜도 기뻐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4

이방 왕이 선지자보다
설교를 잘한다

요나 3:4 · 3:7-9

요나의 니느웨 설교는 히브리어 원문으로 단 다섯 단어였어요.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나님의 이름도, 회개하라는 말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소망도 없었죠.

그런데 니느웨 왕의 조서(3:7-9)를 보세요. 훨씬 길고, 내용도 훌륭해요.

금식하라.
하나님께 힘써 부르짖으라.
각자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나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실지 누가 알겠느냐.

회개 설교의 핵심이 다 들어 있어요. 정작 제대로 된 회개 설교는 선지자가 아니라 이방 왕이 한 셈이에요. 게다가 왕의 "누가 알겠느냐"는 요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했던 말(욜 2:14)과 거의 똑같아요.

돌아보기
복음을 "전하긴 했다"는 것과 "마음을 담아 전했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5

사명에는 다섯 단어,
불평에는 한 문단

요나 3:4 · 4:2-3

요나서에서 요나가 가장 길고 유창하게 말하는 장면은 어디일까요? 니느웨 설교가 아니에요. 4장의 불평이에요.

이때 요나는 출애굽기 34장의 신앙고백까지 정확히 인용하며 논리정연하게 하나님께 따져요.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원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쓰던 고백인데, 요나는 이걸 불평의 근거로 써요.

사명 앞에서는 다섯 단어, 불만 앞에서는 한 문단. 우리도 기도할 때 감사보다 불평이 더 길어질 때가 있잖아요. 😄

돌아보기
오늘 나의 기도에서 감사와 불평 중 어느 쪽이 더 길었는지 돌아봅니다.
6

하나님은 요나를
"악"에서 건지려 하신다

요나 1:2 · 3:10 · 4:1 · 4:6

요나서에는 히브리어 라아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요. 우리말 성경에서는 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되어서 잘 안 보이지만, 원문에서는 한 단어예요.

·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 (1:2)
· 하나님이 니느웨에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셨다 (3:10)
· 그것이 요나를 매우 싫게(악하게) 했다 (4:1)
· 박넝쿨로 요나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셨다 (4:6)

보이세요? 니느웨가 악에서 떠나자, 그 악이 요나에게로 옮겨 간 것처럼 그려져요. 그리고 하나님은 니느웨를 악에서 건지셨듯이, 이제 그 악에 물든 요나까지 건지려고 박넝쿨을 주세요. 박넝쿨은 요나를 위한 작은 니느웨 사건인 셈이에요.

돌아보기
남의 죄는 잘 보이는데 내 안의 미움은 잘 안 보일 때, 하나님은 그 미움에서도 나를 건지기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7

이름 있는 사람이
가장 못났다

요나 1–4장 전체

요나서에 나오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선장, 선원들, 니느웨 백성, 니느웨 왕. 모두 이름이 없어요.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딱 한 명, 요나뿐이에요.

그런데 그 이름 있는 주인공이 이 책에서 제일 불순종하고, 제일 늦게 반응하고, 제일 마음이 좁아요. 선원들은 기도하고, 선장은 깨우고, 왕은 회개를 명하고, 심지어 물고기와 벌레와 바람까지 하나님 말씀에 바로 반응하는데, 요나만 끝까지 버텨요.

이름 없는 이방인들이 이름 있는 선지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 요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표가 곧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조용히 말해요.

돌아보기
"믿는 사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맺는 글
하나님을 제일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서 제일 멀 수 있다

요나서는 이 사실을 웃기게, 하지만 아프게 보여줘요. 그리고 책은 요나의 대답 없이,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나요.

요나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우리는 몰라요. 그래서 이 질문은 결국 오늘 읽는 우리에게 넘어와요.

"내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어찌 옳지 아니하냐" (4:11)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